신명리에 갔었지 하나 뿐인 동백 궁금해 견딜 수 없었지
귀 열어 놓고 눈 열어 보아도 매운 날에만 꽃을 피우는
동백의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 누이여 누이여
아참 그렇군 천지를 들쑤셔 사방에 돋아나는 전율 전율
동박새 울음소리 오늘 밤은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겨울비 소리로 다 내릴듯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소금 두어점에 묻혀 내 유년 모두 걷어 갔을가
할아버지가 키우시던 그 동백
음악을 듣다가 동백에 대해 검색해 보니 아래와 같은 동백에 대한 전설이 있더군요.
옛날에 욕심 많고 잔학한 왕이 있었는데 후사가 없었던 모양이죠?
그런데 왕의 동생에게는 아들이 둘씩이나 있었대요.
왕은 동생의 두 아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이를 눈치챈 동생이 아들들을
피신시킨 뒤 가짜를 집에 두었는데
이마저 알게된 왕이 가짜 아들들을 처단한 뒤 피신한 진짜 아들을
데려다 놓고 동생에게 너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으니
직접 처형해보라고 명했대요.
아들을 칼로 내리치는 대신 동생은 그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답니다.
피를 뿌리고 쓰러진 동생은 동백나무가 됐고,
동생의 죽은 두 아들은 동박새가 됐다는 전설이죠.
카테리니행 열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이 노래는 그리스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음악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작품으로, 그는 이 노래를 작곡한 지 얼마 안 되어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국외추방을 당한다. 우리에게는 sbs의 드라마 <백야>의 주제가로, 또 조수미가 불러 친숙해진 노래인데, 비장하면서도 애절한 가락에 카테리니라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남녀간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운동가를 애인으로 둔 한 그리스 여성의 이별가다. 11월의 어느 기차역에서애인을 만나기로 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 카테리니로 가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 애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는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잡혀서 투옥되거나, 아니면 계속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하거나 간에 어쨌든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그가 떠난 시간과 공간인 이 11월과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원곡의 가사에는 그가“비밀을 간직한 채”, “가슴에 칼을 품고서” 떠났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는 1974년 민주화되기까지 밖으로는 외세의 압박과 안으로는 왕정과 군부독재의 철권통치로 신음해 왔던 나라다. 이러한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테네 음악원의 학생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청년운동을 시작하여 수차례나 투옥됨으로써 그리스 현대사의 한 복판에 뛰어들게 된다.
종전 후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내전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의 승리로 끝나자 테오도라키스는 귀국 후 그리스 민속음악인 람베티카를 기본으로 민중의 정서를 담은 수많은 가요를 만들었다. 람베티카는 “하층민으로부터”라는 그 뜻이 말해 주듯 피억압계층의 민요이다. 이 람베티카가 테오도라키스에 의해 저항가요로 부활하자 군부독재는 이를 금지시켰고, 그러자 람베티카는 다시 지하클럽에서 청년계층에 의해 새 노래운동인 네오 키마(Neo Kima)로 발전하게 된다.
1963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람브라키스가 한 괴한에게 암살당하자 테오도라키스는 람브라키스민주청년회(Lambrakis Democratic Youth)를 조직하고 의장으로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해나간다. 1967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테오도라키스를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하였다. 출판과 언론에 대한 검열도 강화해 테오도라키스의 작품판매와 방송은 물론 그의 작곡, 지휘, 연주를 포함해 그의 음악을 듣는 것까지도 금지시켜 버렸다.
테오도라키스는 체포되어 국외망명의 길에 올랐고, 군정이 끝나고 민정으로 이양된 1974년까지 장장 7년간이라는 세월을 해외에서 떠돌아야 했다.
1992년 모든 공직을 사임한 테오도라키스는 작곡과 지휘에 전념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인권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1996년 그리스와 터기 양국 간 영토분쟁으로 전운이 감돌 때, 터키의 대표적 음악인 줄푸 리바넬리와 함께 평화지대인 사이프러스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음악회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줄푸 리바넬리 역시 테오도라키스와 같은 시기에 터키에서 추방당했었고, 이들 두 사람은 해외에서 유랑생활 중 만나 자연스럽게 우정을 다져왔었다.
- 지난 1년 6개월동안 매월 글을 써주셨던 유요비 선생님의 연재를 마감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유요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