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호민론(豪民論)

천하에 두려워할 바는 오직 백성 뿐이다. 백성은 물, 불, 호랑이 표범보다 두렵기는 더한데, 위에 있는 자가 제 마음대로 이들 백성들을 업수이 여기고 혹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릇 자기 처지를 그저 즐거워하면서, 늘 눈 앞의 이익에 얽매여 그냥 시키는 대로 법을 받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는 恒民이다. 항민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발라져 나가고, 뼈가 빠지며, 집에 들어온 것이나 땅에서 난 것을 모조리 빼앗기고는, 시름하고 탄식하며 입속으로만 윗 사람을 탓하는 자는 怨民이다. 그러나 이  원민도 반드시 두려운 것은 아니다.

자취를 푸줏간에 숨기고 남 몰래 다른 마음을 품고서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곁눈질하다가 행여 때를 만나면, 자기의 소원을 풀어 보려고 하는 자는 호민이다. 무릇 豪民은 매우 두려운 존재이다.

호민이 나라의 틈을 엿보다가 적당한 때를 타면 분연히 팔을 떨쳐 밭두렁 위에 올라서서 한 번 크게 외치면, 저 원민들은 소리만 듣고도 모이며, 모의 한 번 하지 않아도 함께 외친다. 이에 항민들도 또한 살기 위해서 호미와 고무래와 창자루를 들고 따라가서 무도한 자들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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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ogZ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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